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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FC

또또아범 2024. 1. 1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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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파의 강한면모를 보여주는 세비야
세르히오 라모스, 다니 아우베스. 이반 라키티치, 헤수스 나바스,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프레데리크 카누테가 뛰던 팀

100년 이상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세비야 동부 특유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클럽. 레알 베티스와 오랫동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투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라리가 우승은 1회(1945-46 시즌)뿐이지만, 유독 UEFA 유로파 리그에서는 무려 7번이나 우승하는 막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는 유로파 리그 최다 우승 기록이며, 2위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리버풀 FC, 유벤투스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3회 우승) 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안달루시아 더비' 혹은 '세비야 더비'로 불리는 세비야FC와 레알 베티스의 라이벌 대결은 스포르팅 히혼과 레알 오비에도의 '아스투리아스 더비'와 함께 스페인에서 가장 치열하면서도 폭력적인 더비로 손꼽힌다. 심지어, 엘 클라시코마저도 폭력적인 부분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할 정도다. 과거에는 구단주들끼리 주먹다짐도 벌어졌고 세비야 구단주가 레알 베티스 구단주를 계단에서 밀어버려 굴러떨어지게 만든 사건도 있었을 정도였다.

'로스 네르비오넨세스(Los Nervionenses)'란 애칭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별명이 붙은 이유는 네르비온(Nervion)이란 세비야 동부 지역을 팀의 근거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네르비온은 일찍부터 세비야에서 가장 현대화 된 지역이자 상업 중심지로 손꼽혀 왔으며, 명문 세비야 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비야는 창단 이래 이 지역의 중산층으로부터 꾸준한 지지를 받아 온 '부자들의 클럽'이다.
이러한 배경은 노동자 계층에 대한 엄청난 차별대우를 불러왔다. 창단 얼마 뒤에는 아예 노동자나 빈민층 출신 선수들의 입단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파장을 불러왔고, 이에 불만을 품은 반대세력에 의해 창설된 클럽이 바로 베티스였다.

베티스 역시 '레알(Real)'이란 작호가 말해주듯, 처음에는 귀족층 및 왕가로부터 지지를 받은 클럽이었지만, 세비야에 의해 배척된 노동자 선수들과 팬들을 모두 받아들인 만큼 태생 자체가 '반 세비야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비야 팬들인 세비이스타(Sevillista)와 베티스 팬들인 베티코(Betico)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는 사이였던 셈이다.

세빌리스타들은 베티코들을 '페티스(Fetiz, 쓰레기들)'로 부르며 멸시했고, 반대로 베티코들은 세빌리스타들을 '팔라가나스(Palaganas, 허세 부리는 놈들)'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100년에 가까운 앙숙관계인 세빌리스타와 베티코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패배하는 걸 더 기뻐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07년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는 많이 분위기가 완화되었다지만 아직도 울트라끼리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더비때는 각 팀의 울트라들이 응원을 가기 위해 경찰이 동원되어 호위를 할 정도.
2021-22 시즌 ELO 포인트 89점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참고로 최저치는 2부 리그 충격의 강등 당시에 기록한 59점이다

1905년에 영국인들이 창단했는데, 처음으로 치른 경기는 우엘바 레크리에이션 클럽(현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였다. 한동안 빛을 못 보다가 1932년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이 회장으로 취임해 1935년과 39년에 각각 두 차례 장군컵(현 코파 델 레이)을 차지했고, 1941년에 산체스 회장이 스페인축구협회 부회장에 전념하기 위해 사임했다. 이후 안토니오 산체스 라모스 회장을 거쳐 1942년 세비야 시장 헤로니모 도미니게스가 회장이 된 후 1945/46 시즌에 리그 우승, 1947/48 시즌에 장군컵 우승을 각각 차지해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 1948년에 피스후안이 7년만에 돌아왔지만 1956년에 급사해 팬들에게 슬픔을 안겨줬고, 사망 2년 후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세워졌다. 그러나 구장 이전 후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1970년대 후반에 다니엘 베르토니, 1990년대에 디에고 마라도나, 다보르 슈케르와 같은 스타 선수들이 팀을 거쳐가긴 했지만, 1995년 초에 파산 직전의 위기를 맞이하며 1997-98, 1998-99, 2000-01 시즌을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보내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기 전에 최대 암흑기를 겪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유스팀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투자를 감행하였다. 2000년에 부임한 로베르토 알레스 가르시아 회장은 몬치를 단장(Director of football)으로 임명하고, 2002년에 호세 마리아 델 니도가 회장으로 취임하여 클럽 운영체제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헤수스 나바스, 세르히오 라모스와 같은 결실을 맺어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성기를 꽃피웠다.

유로파 리그에선 끝판왕의 위상을 가진 팀이다. 우승 7회로 대회 최다 우승 팀, 2013-2014 시즌부터 2015-2016 시즌까지 3연속 우승, 8강 이상 진출 시, 결승전 진출시 승률 100% 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오죽하면 시대를 주름잡는 최강의 팀들조차 챔피언스리그 말고 유로파리그에서 세비야와 붙으면 질거라는 반쯤은 진지한 농담도 나올 정도. 22-23시즌 유로파리그가 진행중일때 한국 해설자들은 세비야를 유로파의 황제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유로파리그로 떨어진 팀들의 팬들은 세비야가 제발 챔피언스리그에서 조 2위로 그냥 16강에 가거나 아예 조 4위로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들은 귀신같이 조 3위로 유로파리그에 나타나고 우승을 차지한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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