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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D 에스파뇰

또또아범 2024. 2. 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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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세군다 디비시온 소속 프로축구클럽이다.

1900년 카탈루냐의 중심도시 바르셀로나의 카스티야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구단이다. 이 팀은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처럼 여자축구와 남자/여자농구, 남자 링크하키, 남자/여자배구까지 하는 종합 스포츠단이기도 하다.

팀 명칭인 에스파뇰은 '에스파냐의' 를 뜻하는 말로, 스페인에서 최초로 카스티야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에스파뇰은 그 출발부터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바르셀로나와 크게 달랐다.

구단 전통의 애칭은 '페리키토스(Periquitos)'이며, 팬들은 보통 '페리코(Perico)' 혹은 '에스파뇰리스타(Españolista)'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페리키토스(뻬리끼또스)는 우리말로 앵무새들이란 의미다. 이 별명의 기원은 과거 에스파뇰의 홈구장이었던 사리아 스타디움 근처의 공원에 항상 많은 앵무새들이 날아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8년부터 육상트랙이 있는 몬주익 올림픽 구장을 사용했으나, 지난 2009년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용구장 '코르네야 엘-프라트'를 개장하며 새 시대를 열었다.

2018-19 시즌 유로파 리그 진출 후 ELO포인트가 82점까지 올랐으나 바로 다음 시즌 부진 후 78점으로 떨어지고 2부리그에서 1년동안 갇히는 동안 68점까지 떨어지고 2021-22 시즌 현재 69점이다

1900년에 앙헬 로드리게스 등 바르셀로나 대학 공학부 학생들에 의해 창설된 클럽이었지만, 오직 스페인 국적의 선수에게만 입단을 허용하는 등 '친 카탈루냐적' 성향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로 인해 구단명 역시 스페인인(에스파냐인)들의 클럽이란 뜻이 내포된 '클루브 에스파뇰 데 풋볼(Club Español de Fútbol)'로 정해졌다.

이후 1912년에는 알폰소 13세에 의해 왕가의 작호를 수여받아 '레알 클루브 데포르티보 에스파뇰 데 바르셀로나(RCD 에스파뇰)'라는 현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카탈루냐팀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서 카탈루냐 토박이 팬도 많다.

1923년에 에스타디 데 사리아로 둥지를 튼 후 2000년 이전까지 코파 델 레이를 2번 차지했으나, 리그 성적은 바르사에 비해 초라했다. 프랑코 독재 시절에는 바르셀로나를 견제하기 위한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에스파뇰은 스페인 중앙정부에서 바르셀로나로 파견된 군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로 인해 반정부 성향의 카탈루냐인들로부터 한동안 배척받았다. 또 1988년 UEFA컵 결승전 때는 차범근이 이끄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의 승부차기 희생양이 된 팀이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카탈루냐 클럽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은 1997~2011년까지 부임한 다니엘 산체스 이브레 회장이다. 그는 바르셀로나를 향한 라이벌 의식을 꾸준하게 표출해내 '카탈루냐 더비'의 열기를 한 층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된다. 1998년에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이던 에스타디 올림픽 류이스 콤파니스로 옮겼다.

라울 타무도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아르테아가, 세르히오, 데 루카스 등을 앞세워 1999-00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2-03 시즌에도 거액을 투자하고 스타선수 영입을 연거푸 해냈지만, 정작 선수들이 호흡을 잘 맞추지 못하고 전술도 써먹지 못해 성적이 떨어졌다. 시즌 내내 후안 데 라모스부터 하비에르 클레멘테까지 총 3명을 갈아치워가며 고전한 채 레크레아티보 우엘바를 승점 7점차로 제치고 겨우 17위를 찍어 턱걸이를 했다.

2003년 프리시즌 때 로헤르 가르시아를 비야레알로 팔고 풀럼으로부터 카메룬 국대 출신 피에르 워메를 사들였음에도 2003-04 시즌엔 16위를 찍었으나, 2004-05 시즌에 6위로 UEFA컵 진출권을 얻어 반전의 기회를 마련했다. 뒤이어 2005-06 시즌 코파 델 레이에서 레알 사라고사를 꺾어 통산 4번째 우승을 거두고 2006-07 시즌 UEFA컵에서 8강에서 벤피카, 4강에서 베르더 브레멘을 각각 꺾어 결승에 갔으나, 아쉽게도 세비야에게 1무 1패로 졌다.

1990년대부터 유스팀에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하여 자체적으로 양질의 유망주들을 키워내 왔을 뿐 아니라, 바르셀로나에서 자리 잡지 못한 카탈루냐인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2009년에 새 홈구장 이전을 앞두고 팀의 주장이었던 다니엘 하르케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고, 2016년에는 중국의 완구재벌 라스타 그룹에 인수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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