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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또또아범 2024. 11. 2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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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프로 축구팀. 세계 축구 4대 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소속되어 있다.

연고지는 독일의 대표적인 군수산업 도시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묀헨글라트바흐 시(Mönchengladbach)이며, 경기장은 보루시아 파르크(Borussia Park)이다. 연고지인 묀헨글라트바흐의 식별부호인 '엠게(MG)'로 약칭하기도 한다.

분데스리가가 세계 최고 리그로 인정받던 197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독일과 유럽을 제패하는 등 정점을 찍었으나 80년대에 들어 쇠락기를 겪었고, 1998-1999 시즌엔 처음으로 강등까지 당하고 만다. 이후 2001년 다시 승격을 이뤘지만, 2007년에 다시 강등당했다. 2008년 승격을 이뤄낸 후론 꾸준히 1부 리그에 몸담고 있다. 2010-11 시즌에 16위를 찍은 직후 5시즌 연속 10위권 안에 들었으며, 12-13 시즌 빼고는 모두 5위권 안의 성적을 거두었다. 14-15 시즌에는 2000년 이후 최고 성적인 '3위'를 거두었다.

최고 리그 시절 전성기를 구가한 유서깊은 클럽으로 유명한 선수들도 많이 배출했다. 2000년대 암흑기가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상위권으로 돌아왔다. 전성기 이후 40년 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 했어도 여전히 인기는 많은 편이라 약 4만명의 회원과 많은 서포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규모는 독일에서 여섯 번째다. 1970년대 인구가 30만이 안되는 도시에서 리그를 제패하는 모습과 특유의 공격 축구가 팬들의 깊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클럽의 상징은 망아지로, 마스코트의 이름은 Jünter다. 글라트바흐는 전통적으로 20대 초반의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는 팀이기도 하다.

1900년 지역 청년들의 축구 동호회에서 출발해 점차 세를 키우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1960년 처음으로 독일 컵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에는 바로 합류하지는 못했다. 이는 당시 지역 리그에서 성적이 아주 우수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1965-66 시즌부터 합류해 그 뒤로 분데스리가의 강호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팀의 최전성기는 1970년대로 1970년대에만 무려 5번의 분데스리가 우승, 2번의 DFB-포칼 우승과 UEFA컵 우승, 그리고 유러피언컵 결승에까지 오르는 그야말로 리그를 정복하는 수준의 실력을 자랑했다.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우도 라텍과 같은 명 감독과 귄터 네처, 유프 하인케스, 울리 슈틸리케, 베르티 포크츠, 라이너 본호프, 알란 시몬센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앞세워서 그야말로 1970년대 독일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1975/75 시즌에는 유러피언컵(현재 챔피언스 리그) 8강까지 진출하였으나 레알 마드리드에 밀려 탈락하였으며 이듬해인 1976/77 시즌에는 결승전까지 진출하였다. 결승전에서는 리버풀에 1:3으로 패배.

또한 현재의 유로파 리그로 변경된 UEFA-컵 에서는 1974/75 시즌 및 1978/79 시즌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79/80 시즌에는 결승전까지 진출하며 통산 3회 및 2연속 우승에 도전하였으나 프랑크푸르트에 밀려 준우승에 만족해야했다.

이 시기에 그들의 강대함을 잘 알려주는 기록이 분데스리가 한 경기 최다 골 차이 경기인데, 1978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무려 12:0으로 박살낸 적이 있었다. 1974-75시즌부터 1976-77시즌까지 기록한 3시즌 연속 우승은 오직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묀헨글라트바흐만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1979년에 유프 하인케스가 감독이 된 이후 1980년대 접어들면서 재정 문제가 겹치고, 점차 축구 리그가 돈의 흐름이 좌우되면서 점점 쇠락기에 접어든다. 인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닌데, 로타어 마테우스나, 올리버 노이빌레, 세바스티안 다이슬러, 마르코 마린, 마르코 로이스와 같은 재능들은 꾸준히 출현했지만, 이들을 붙잡을 돈이 없었다. 1980년 프랑크푸르트에게 UEFA컵 우승을 내주고 1984년 골 득실 차로 아깝게 우승을 놓친 이후,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급기야 1999-2000 시즌 첫 강등을 당한 후, 그 뒤로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했다. 2부리그에서 2번째 시즌이었던 2000-2001시즌에 2위를 기록하며 승격을 했지만 1970년대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고 계속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2004-05시즌의 딕 아드보카트도, 2006-07시즌 팀의 레전드 유프 하인케스도 팀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급기야 2006-07시즌 성적부진으로 하인케스는 사임했고 결국 그 시즌 최하위로 강등당했다. 1년만에 2부리그를 우승하며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왔으나 계속해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2011-12시즌 4위로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전까지 21세기 글라트바흐는 단 한 번도 분데스리가에서 상위 50%(9위) 이내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는 대표적인 중하위권 팀으로 꼽혔었다.
2004년에는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기존의 34,500명 수용 가능한 뵈켈베르크슈타디온에서 54,067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보루시아 파크로 경기장을 이전하였다.

1970년대 유럽 무대에서 지겹게 만나는 리버풀 팬들과 친밀해져서 훗날 1989년 힐스버러 참사 때는 그들을 위해 기금도 마련했다.

뮌헨과 헷갈리는 발음 때문에 글라트바흐라고 줄여쓰기도 한다. 발음도 그렇고 철자 역시 어지간히 헷갈리기 때문에 다른 언어권 사용자 입장에선 부를 때나 쓸 때나 꽤나 어려워하는 팀이기도 하다.

이렇듯 서로 비슷한 이름도 있지만 묀헨글라트바흐와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라이벌이기도하고 분데스리가에서도 절대강자에 군림하고있는 바이에른 뮌헨이 유독 승리하기 어려워하는 상대가 바로 묀헨글라트바흐이다. 뮌헨이 좋은 기세를 이어나가다가도 묀헨을 만나면 쩔쩔매다가 패배하거나 묀헨은 내내 좋지않은 경기력으로 부진에 빠져있다가도 유독 뮌헨을 만나면 펄펄 날아오르는 등 극상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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