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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아리 칼초

또또아범 2025. 8. 20.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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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창단된 축구팀이며 현재는 세리에 A에 속해있다. SSC 나폴리와 더불어 이탈리아 남부 연고지의 팀 중 세리에 A 우승 경험이 있는 두 팀 중 하나이다. 연고지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 남부에 있는 칼리아리 시.

창단 후에 많은 시간들을 세리에 C와 세리에 B에서 보냈다.


1964년 세리에 A로 승격하면서 칼리아리의 첫 세리에 A 데뷔 시즌 당시에 스쿼드에는 수비수에는 마리오 마르티라돈나, 미드필더에는 피에를루이지 체라, 네네와 리초티 그레아티 그리고 공격수에는 루이지 리바가 있었다. 칼리아리는 첫 시즌을 안좋게 시작하며 전반기를 단 9점을 획득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후반기에는 유벤투스와 AC 밀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등의 놀라운 성적을 거둬 34점으로 7위를 기록했다. 1966-67 시즌에는 칼리아리가 리그의 최고 방어율을 기록하는 동안 루이지 리바는 처음으로 세리에 A 득점왕 자리에 올랐다. 칼리아리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68-69 시즌에 세리에 A 우승을 두고 AC 밀란과 ACF 피오렌티나와 함께 우승을 다투면서였다. 피오렌티나가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다음 시즌에 칼리아리는 궁극적인 영광을 보내게 된다. 안젤로 도멘기니가 팀에 합류하고 칼리아리는 리그에 단 2패와 11골을 실점하며 리그 우승을 거뒀고 루이지 리바는 한번 더 득점왕 자리에 올랐다. 체라, 도멘기니와 리바 같은 선수들은 1970년 FIFA 월드컵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참가하여 결승전 무대를 밟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1970년대에 칼리아리의 성적은 중위권으로 추락했고 결국 1975/76 시즌 16개 팀 중 16위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칼리아리의 세리에 A 첫 강등과 함께 리바도 은퇴하였다.

1999-00 시즌 18개 팀 중 17위로 세리에 B로 강등된 후 기약없는 2부리그 생활을 하다가 2003년 첼시의 레전드 지안프랑코 졸라가 고향팀인 칼리아리로 왔고 곧바로 그는 나이를 잊어버린 활약으로 13골이나 기록하며 칼리아리를 4년 만에 세리에 A로 올리게 된다. 그리고 2004-05 시즌 세리에 A에서 9골을 넣으며 팀을 12위로 중위권에 위치시키는 데 공헌하고 박수받으면서 은퇴했다.

졸라가 떠난 2005-06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으로 강등권으로 추락하며 감독을 세 번이나 교체하는 혼란을 겪었다. 다행히 후반기 네도 소네티 감독과 스트라이커 다비드 수아소의 활약으로 강등권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2006-07 시즌에도 수아소의 활약 속에 2번의 감독 교체 끝에 17위로 간신히 잔류에 성공했다. 2007-08 시즌에는 공격수 수아소와 키멘티 골키퍼, 핵심 윙어 에스포시토, 란겔라가 한꺼번에 팀을 떠났고 로베르트 아쿠아프레스카, 알레산드로 마트리, 파스콸레 포지아 등 이탈리아에서 이름난 영건으로 이들을 대체하려는 시도를 했다. 2번의 감독 교체 끝에 꼴찌까지 추락했다가 발라르디니 감독 체제에서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된 골키퍼 마르코 스토라리와 공격수 제다가 중요한 활약을 펼치며 14위로 강등권에서 탈출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발라르디니 감독은 강등에서 팀을 건졌음에도 재계약에 실패하고 하부리그에서만 감독을 맡아왔던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신임 감독이 되었다. 개막 후 5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강등 1순위로 떠올랐지만 오히려 그 후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강등권에서 19점이나 먼 9위로 마감했다. 2008-09 시즌의 깜짝 선전 이후에는 첼리노 구단주가 감독을 파리 목숨 취급하면서 어찌어찌 세리에A에서 중위권에 머무는 구단이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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