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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마 칼초 1913

또또아범 2025. 8. 2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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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에 A 소속 프로 축구 클럽으로 연고지는 파르마. 1913년에 창단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990년대에 네비오 스칼라 감독 시대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2015년 파산한 이전 구단의 전통을 이어받아 동년 7월 새롭게 설립되었으며, 2018년 세리에 D에서 시작하여 3년 연속 승격하는 기록을 세워 세리에 A에 복귀했다.

홈구장은 스타디오 엔니오 타르디니로 27,906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홈 유니폼은 가슴에 검은 십자가가 있는 흰색 셔츠이다.

아직 세리에 A 우승은 없지만, 클럽 역사상 3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2차례의 UEFA컵 및 1차례의 유러피언 컵위너스컵과 UEFA 슈퍼컵 우승을 포함하여 다수의 국내 및 국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이 팀의 유명 선수로는 잔루이지 부폰, 릴리앙 튀랑, 파비오 칸나바로, 잔프랑코 졸라, 에르난 크레스포,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카를로 안첼로티, 엔리코 키에사, 체스트미르 비츠팔레크 등이 있다.


파르마는 창단 직후인 1913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역사 동안 구단의 명칭 또한 여러 번 바뀌었고, 3번의 파산, 3번의 재창단을 겪을 정도로 다사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리에 7공주 시절의 파르마 AC, 세리에 중위권 시절인 파르마 FC, 이제 막 세리에 B를 우승하고 올라온 파르마 칼초 1913 시절까지. 가지각색의 모습을 보여준 구단이기도 하다.

파르마의 축구 역사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파르마에서 축구는 '도폴라보로'정도였으며, 주로 도시 내 군사 캠프에서 행해졌다. 기록에 남아있는 첫 축구 경기는 1911년 프로 베르디(Pro Verdi) 학생팀과 살소마조레(Salsomaggiore)의 유벤투스팀 간 경기로, 0-1로 패했다.

1913년 7월 27일, 주세페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베르디 풋볼 클럽(Verdi Football Club)이 공식적으로 창단되었다. 그러나 베르디 FC는 1913년 말에 해체되었고, 같은 해 12월 16일 파르마 풋볼 클럽(Parma Football Club)으로 재탄생했다.

얼마 안 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구단 활동이 중단되었고, 9명의 선수가 입대하여 그 중 5명이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홈 유니폼이 도입되었고, 1922년 12월 31일에는 엔니오 타르디니 회장이 새 경기장의 첫 돌을 놓았다.

1924-25 시즌, 파르마는 ASD 노베세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3-2로 승리하여 최상위 리그인 프리마 디비지오네에 승격했다. 그러나 첫 시즌에서 유벤투스, 밀란, 제노아와 같은 강팀들과 경쟁하며 고전했고, 이후에는 프리마 디비지오네 노르드에서 주로 활동했다

1930년에 구단은 다양한 스포츠를 포괄하는 종합 스포츠 클럽으로 변모하여 파르마 아소시아치오네 스포르티바(Parma Associazione Sportiva)로 개명했다. 이 시기에는 축구 외에도 럭비, 배구, 탬버렐로 등의 스포츠를 포함했다. 그러나 축구가 여전히 핵심 활동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프리마 디비지오네에서 활동했다.

전쟁 후 세리에 B에 배치되었고, 1947-48 시즌에는 프라토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리그에 잔류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스페치아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4-1로 패하며 세리에 C로 강등되었다.
1953-54 시즌,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선수들인 체스트미르 비츠팔레크와 율리우스 코로스텔레프, 그리고 이탈리아 출신 에드몬도 파브리와 윌리엄 브론조니의 활약으로 세리에 B로 복귀했다. 1953년부터는 크로스 디자인의 유니폼에서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소매 또는 노란색 디테일이 있는 유니폼으로 변경했다.

1964-65 시즌, 파르마는 세리에 B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세리에 C로 강등되었다. 이후 팀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1966-67 시즌과 1967-68 시즌 모두 세리에 C 복귀에 실패했다.

1968년 1월 2일, 파르마 재정 위기가 심화되면서 구단이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도시의 산업가들이 구단을 인수하여 파르마 풋볼 클럽으로 개명했으나, 경기력과 재정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1968-69 시즌 말, 세리에 D에서 간신히 강등을 피했으나, 파르마 법원은 구단의 재정 상황이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파산을 선고했다.

1968년에 설립된 아마추어 클럽 AC 파르멘세(AC Parmense)가 파르마 FC의 역사, 크로스 유니폼 착용 권리, "파르마"라는 이름 사용 권리를 약 2천만 리라에 구매했다. 1969-70 시즌이 시작될 때 파르멘세로 출전했지만, 1970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파르마 AC(Parma Associazione Calcio)로 개명했다.

새 구단은 빠르게 발전하여 1970-71 시즌에 세리에 C로 승격했다. 세리에 C에서 3년 동안 좋은 성적을 거둔 후, 1972-73 시즌에는 우디네세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세리에 B로 승격했다.

1970년대 후반, 에르네스토 체레시니가 구단주로 취임하고 체사레 말디니가 감독으로 부임한 후, 1978-79 시즌에 트리에스티나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3-1로 승리하며 세리에 B로 복귀했다. 그러나 1979-80 시즌에는 세리에 B에서 최하위 마테라 바로 위인 19위를 기록하며 다시 강등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세리에 C1에서 중위권을 유지했다.[1980-81] 1983-84 시즌, 파르마는 마지막 경기에서 산레모를 1-0으로 이기며 세리에 B로 승격했지만, 이듬해 다시 강등되었다.

1985년, 아리고 사키가 감독으로 부임하여 1985-86 시즌 세리에 C1 우승을 이끌었다. 1986-87 시즌 세리에 B에서는 세리에 A 승격을 불과 3점 차이로 놓쳤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밀란을 꺾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3년 12월, 모기업 파르마라트의 심각한 회계 부정과 파산 소식이 드러났다. 칼리스토 탄치는 체포되었고, 구단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어 파산 관재인의 관리 하에 놓여지게 되었다. 2004년 6월, 클럽 파산을 피하기 위해 파르마 FC(Parma Football Club)로 개명했다.
쇠퇴하며 세리에B로 강등되기도 했으며

2015년 3월 19일, 구단 파산이 확정됐다. 잔여 경기는 예정대로 치렀고 유벤투스도 잡아내는 등 어떻게서든 강등을 면하고 인수자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최종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세리에 D로 강등(아마추어팀으로 강제전환)+구단명 박탈을 당하게 됐다. 15-16시즌부터 파르마 칼초 1913이라는 구단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20-21 시즌 다시 세리에 B로 강등되었으며
이후 3년 만에 세리에 A 복귀를 하게 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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